추사가 언급한 과천의 모습
두 번의 유배에서 풀려나 추사가 과천의 과지초당에서 말년을 보낸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먼저 장기간의 유배로 인하여 경복궁 옆 월성위궁을 유지하지 못했거니와, 향리로 방축된 동생 명희와 상희가 과지초당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고하게 귀양살이를 했던 생부 김노경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도성에 가까운 과천의 과지초당에 자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부를 위해 두 번이나 격쟁을 하였을 정도로 효자였던 추사가 말년에 취할 수 있었던 적극적 선택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