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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지초당(瓜地草堂)
추사 선생이 과천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생부 유당 김노경(1766 ~ 1837) 이 주암동에 과지초당을 조성하면서 부터이다.
과지초당은 1824년 청계산 옥녀봉 아래 돌무께(현 주암동)에 마련한 일종의 별장이다. 과지초당은 정원과 숲이 빼어나고, 연못의 아름다움을
갖추어 추사 가문의 절정의 역량을 상징하는 곳이다. 과지초당은 청계산과 관악산 사이에 있다하여 청관산옥(靑冠山屋)으로도 불리웠다.
당시 김노경이 청나라 학자 등전밀(1795 ~ 1870)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에서 "저는 노쇠한 몸에 병이 찾아들어 의지가 갈수록
약화되는데 직무는 여전히 번잡해서 날마다 문서에 파묻혀 있습니다. 요사이 서울 가까운 곳에 집터를 구해서 조그마한 집을 하나
마련했는데 자못 정원과 연못의 풍모를 갖췄습니다. 연못을 바라보는 위치에 몇 칸을 구축해서 '과지초당' 이라 이름하였습니다.
봄이나 가을 휴가가 날 때 적당한 날을 가려 찾아가 지내면 작은 아취를 느낄만해서 자못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 합니다(1824.11.20)" 라고 하였다.
1837년(현종3)에 김노경이 별세하자 추사는 부친의 묘역을 과지초당 인근 옥녀봉 중턱 검단에 모시고, 과지초당에서 3년상을 치루었고,
그 후 과천을 자주 찾아 과지초당에서 보내는 시일이 늘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 및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1852년(철종3) 8월 이후
1856년 10월 10일 서거하기까지 말년 4년간을 과지초당에서 지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과천시에서는 추사 선생의 삶과 예술을
기리고자 2007년 과지초당과 독우물을 추사로 78에 복원하였다.
'가을날 과지초당에 다시 오다(秋日重到瓜地草堂)'
문을 나서니 가을이 정히 좋아,
스님과 더불어 애련함을 다시 견디어 내네.
가물가물한 삼봉의 빛은,
어언간 다섯 해 전이로세.
푸른 이끼 낡은 집에 그대로 늙어가고,
붉은 잎 점차 숲을 곱게 물들이네.
동서로 떠돈 적이 하도 오래라
산 속에 저문 연기 잠기어 가네.
- 유배를 마치고 과지초당에 돌아온 추사 선생의 심정을 표현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