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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체육

경기도지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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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유산

효령대군영정

소재지
과천시 자하동길 63
지정일
1978.10.10

효령대군(1396~1486년)은 태종의 둘째 아들로서 이름은 보이고 자는 선숙, 효는 연강이다. 묘는 과천현 동적리(현 서초구 방배동)에 있다. 효령대군의 영정은 연주암 내 효령각에 봉안되어 있으며, 이는 대군이 불교에 귀의하여 많은 불사와 역경사업을 주관하고 연주암과 관악사를 중창한 이유에서 인 듯 하다. 영정은 원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1994년 효령각을 짓고 옮겼다.
71㎝×99㎝ 크기의 비단에 그린 영정은 머리에 익선관 형태의 황색 관모를 쓰고 있으며, 홍의의 도포를 걸친 채 탑형의 용봉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정면관으로 그린 전신좌상이다. 가슴에는 관대를 착용하였고, 오른손으로 잡은 홀의 고리가 발까지 흘러내림과 동시에 무릎 사이에는 옷주름이 묘사되고 있다. 얼굴은 눈썹과 수염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고, 눈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홍의는 채색이 많이 바래 원래 천의 바탕이 보이고 있으나 어깨와 무릎 사이에 운문과 당초문, 하단에는 여의두문과 용비늘 및 발톱이 이금으로 정성껏 처리되었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온온사

소재지
과천시 관악산길 58
지정일
1980.06.02

온온사는 조선시대 과천현 관아에 부속된 객사의 정당 건물이다. 객사는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의 숙소로 이용하던 곳이다.
과천의 객사는 인조 27년(1649) 현감 여이홍이 객사 동헌을 건립하여 창건되고, 이후 현종 7년(1666) 남창조에 의해 서헌이 건립되어 다른 지역의 객사보다 규모가 크다. 이는 조선시대 왕이 남행할 때 과천을 경유하며 묵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온온사란 명칭을 갖게 된 것은 정조가 현륭원 참배를 위해 능행할 때 과천의 객사에 머물며, ‘주위 경관이 좋고 쉬어가기 편하다’하여 ‘온온사(穩穩舍)’란 현판을 내림으로써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헌에는 옛 별호인 부림을 따서 ‘부림헌(富林軒)’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인들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과천면의 청사로 사용되다가, 1932년 기존 건물이 헐리고 원형이 변경되었다. 이후 1986년 전라남도 승주군 낙안객사의 형태를 참고로 해체 복원하였다.
현재 온온사 건물은 석축 위에 정당 3칸, 좌우 익실 3칸을 둔 정면 9칸, 측면 2칸의 구조이며, 팔작지붕집에 정당 부분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연주암 삼층석탑

소재지
과천시 자하동길 63
지정일
1981.07.16

연주암 삼층석탑은 조선초 효령대군의 발원에 의해 5층 석탑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현재 연주암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체 높이 3.2m이다.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기단부는 각 판석을 서로 맞물리도록 구성하여 우주처럼 표현하였다. 기단 아래에는 부연이 있고 지대석 상면에는 연화문을 새겼다. 2단으로 이루어진 상대갑석 위에는 3단의 층급 받침으로 1층의 탑신석을 받쳤다. 그 위에는 전체가 한돌로 구성된 1층 탑신석이 놓여 있는데 양면에 우주를 모각하였다. 한돌로 이루어진 옥개석은 하면에 4단의 옥개받침을 조각하였고, 두터운 전각 끝단은 약간의 반정을 이루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가파르게 처리되었다.
2층 탑신부터는 그 높이와 크기가 갑자기 줄어들고 옥개석 받침도 3단으로만 조각되었다. 2층 탑신에 비해 옥개석 규모가 그다지 줄지 않아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2층과 3층의 탑신석에도 우주만을 간략하게 모각하고 있다. 3층 옥개석 위에 올려진 상륜부는 현재 로반, 영화, 보개만 남아 있다.
석탑은 지대석 위에 보이는 연판문, 한돌로 구성되어 우주가 모각된 탑신석과 4단 내지 3단으로 구성된 옥개받침 등을 미루어보아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한 조선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보광사 목조여래좌상

소재지
과천시 교육원로 41 보광사 내
지정일
1996.12.26

보광사 목조여래좌상은 보광사 극락보전에 주불로 모셔져 있다. 이 좌상은 원래 양평 용문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1991년경 이곳에 옮겨왔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볼륨감과 안정감이 감도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결과부좌한 자세로 연화좌에 앉아 있다. 나발의 낮은 육계 위에 정상계주 없이 머리 중간에 큼직한 상투매듭만 있으며, 얼굴은 반개한 눈,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 늘어진 큰 귀 등에서 부처의 자비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어깨와 가슴은 당당하고 건장한 느낌을 준다. 양 무릎의 폭과 높이도 전체 상의 비례와 시각적으로 알맞은 편이다. 양 어깨에서 흘러내려 한번 접혀진 옷자락과 가부좌한 무릎 좌우로 활처럼 휜 옷자락을 비교적 부드럽고 입체적으로 처리하였다.
이 불상은 17세기 말~18세기 대량제작으로 인해 경직되고 생략적인 상들보다는 조선초·중기의 불상양식을 보인다. 오른쪽 어깨에 자연스레 물결치듯 접히면서 가장자리가 살짝 반전되어 불규칙한 곡선을 이루는 점, 가슴부분에 묶여진 군의의 끝부분을 앙연형태로 표현한 점, 그리고 무릎 사이에 입체적으로 형성된 여러개의 주름 등은 17세기 전기에 제작된 무량사 소조삼존불중아미타불(無量寺 塑造三尊佛中阿彌陀佛)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보광사 목조여래좌상은 늦어도 17세기 중엽 경에는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추사 김정희 서신(3종 23통)

소재지
과천시 추사로 78 추사박물관 내
지정일
2010.09.08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편지로, 일제강점기 때 추사 연구자였던 후지츠카 치카시(1879~1948)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를 그의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1912~2006)가 과천시에 기증한 자료이다. 추사 선생의 두 동생(김명희와 김상희)에게 보낸 13통, 역관 제자인 이상적에게 보낸 4통, 권돈인과 민태호에게 보낸 6통의 편지이다.
40대 전반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는 주로 가족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부모님의 건강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으며, 다산 정약용과 그의 아들 유산 정학연에 관한 언급들도 보인다. 추사 선생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권돈인과 민태호에게 보낸 편지는 과천시절 추사가 교류한 사람들과의 내용을 잘 보여준다. 이상적에게 보낸 편지는 청나라 학자들과의 학연과 관련하여 당시의 학술경향을 언급하고 있어서, 추사가 노년에도 변함없이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서신의 일부는 추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경기도 자연유산

연주대

소재지
과천시 자하동길 62
지정일
2024.7.4.

연주대는 관악산 연주봉의 솟아있는 바위틈에 30m의 축대를 쌓고 나한전을 지은 곳을 말한다.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지은 작은 암자로, 원래 의상대(義湘臺)로 불렸다고 한다.
의상대가 지금의 연주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데에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조선이 건국되고 수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지면서 고려를 그리워한 사람들이 여기에 올라 옛 왕조를 그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설은 태종이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세종)을 세자로 정하려하자 두 형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궁을 나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이다.
연주대의 암자는 철종 때 김완송 스님이 16나한을 봉안하여 나한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입구에는 우진각 지붕의 마애감실에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법약을 준다는 약사여래가 입상으로 봉안 되어있다.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나한전법당 중수기에 의하면 효령대군이 조성)로 추정된다.

경기도 기념물

과천관악사지

소재지
과천시 중앙동 산 12-1
지정일
2003.04.21

효령대군의 얼이 서린 호국도량, 관악사지

「연주암지」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를 개산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태종 11년(1411) 충령대군이 세자에 정해지자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관악산에 올라 심정을 달랬다고 한다. 효령대군은 이곳에서 2년간 수양하며 관악사를 현 위치로 옮기고 40간의 가람을 건설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1999년 과천시에서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에 의뢰하여 발굴조사한 결과, 15세기 전반~18세기 유물들이 춭토되었다. 관악사지는 적어도 6개 이상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시에 건립된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일정한 가람을 건립하고 이것이 수해에 의해 폐사되면 인근으로 옮기거나, 혹은 그 자리에 새로이 조성하여 명맥을 유지하다, 18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찰건물은 급경사 지역에 석축을 쌓아 평탄하게 만든 후 평탄대지를 따라 층계를 쌓듯이 축조하였는데,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인공적인 건물과 자연지형의 조화를 꾀하려는 전통적인 산지가람의 배치 방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경기도 기념물

과천 관악산 육봉일명사지

소재지
과천시 중앙동 산 11
지정일
2003.04.21

불교미술의 일면, 관악산 육봉일명사지

정부과천청사 뒤 관악산 제6봉으로 오르는 중간쯤에 폭포가 있고, 이 폭포에서 오른쪽으로 50m가량 오르면 약 400여평의 대지에 정남향으로 자리한 곳이 일명사지이다.
1999년 발굴조사 결과 복엽8판연화문대석 2점, 단엽8판연화문대석 1점, 석탑재 등이 발굴되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와편 20여 점이 혼재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범어(인도어)가 표시된 숭문기와, 사설문기와, 및 무문의 소와(小瓦)는 통일신라로 구분된 것이기 때문에 일명사지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인 18세기까지 존속되었던 사찰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지는 경기도 지역에서는 보고된 적이 드문 고찰(古刹)로, 비교적 원형을 잃지 않고 있어 수도권 불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기도 무형유산

경기소리(나-긴잡가)

보유자
임정자
지정일
1999.10.18

서울과 경기지방에서 부르던 잡가로, 소리꾼이 앉아서 혼자 장구를 연주하며 노래하므로 좌창으로 분류된다. 잡가는 가곡이나 가사와 같은 정가(正歌)의 반대격으로,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중에서도 긴형식의 노래를 앉아서 부르는 것을 잡가라 한다.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12잡가를 긴잡가라 부른다.
경기 긴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 등 12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가는 산천경치를 노래한 것이고,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따서 사설을 지은 것이다.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와 비슷하고,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와 내용이 통하지만 이들 잡가가 판소리 곡조로 된 것은 아니며 일부 사설만 따왔을 뿐이다. 평양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는 서민적인 인정,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
장단은 흔히 느린 6박 도드리장단이나, 좀 느린 3박 세마치장단으로 된 경우가 많다. 선율은 서도소리제인 수심가토리와 경기소리제인 경토리가 뒤섞인 특이한 음조로 되어 있다.
경기 긴잡가는 경기 특유의 율조로서,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서정적인 표현이 많다. 조선시대 서울 장안 소시민들의 모임장소인 ‘공청’ 또는 ‘깊은사랑’을 통해 12잡가가 발생하였으므로 공청소리문화의 특색을 담고 있는 문화재이기도 하다.

경기도 무형유산

과천무동답교놀이

보유자(개인)
오은명
지정일
2010.06.08.
보유자(단체)
과천무동답교놀이보존회
지정일
2007.02.07.

과천지방에서는 18세기 말 정조가 선친인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비통히 여기며 현륭원(顯隆園)으로 성묘하였는데, 능행이 빈번해지자 그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과천 백성들이 무동놀이 등 연희를 베풀어 임금을 기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승되어 온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명맥이 끊어졌으나, 1981년 이윤영과 과천지역민들이 참여한 과천민속보존회에서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복원하였다. 1982년 제23회 전국민속예술공연대회에서 문예진흥원장상을 수상하면서 과천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현재 과천무동답교놀이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과천무동답교놀이는 풍물놀이, 선소리, 무동놀이가 결합된 전통연희로, 인사굿→당고사→지신밟기→우물고사→마당놀이→무동놀이→지신밟기→다리고사→무동답교→뒷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과천향교

소재지
과천시 자하동길 18
지정일
1983.09.19.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세운 공립 교육기관으로, 공자 등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양민 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었다.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었으며, 명륜당에서 강론되었고 지금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재와 서재가 있었다.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중국 5성과 정호, 주희 등 공문 2철 그리고 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동방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매년 봄(음 2월), 가을(음 8월)에 석전제(釋奠祭)를, 매월 초하루, 보름에 분향례(焚香禮)를 지낸다.
과천향교는 태조 7년(1398)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본래의 위치는 과천 관아 동북 2리에 있었으나, 숙종 16년(1690) 과천현감 황이명이 관아 서쪽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1959년 시흥군이라는 군명에 따라 시흥향교로 사용되어오다, 1996년 본래의 명칭인 과천향교로 바뀌었다.
지금의 향교 건물들은 1975년 9월 중수하였는데 앞쪽에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하고 뒤쪽에 제사공간인 대성전을 두어, 앞에는 학문하는 공간, 뒤에는 제사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건물로서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었던 것을 좌우 양측에 한칸의 측실이 덧대어 있다. 외삼문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솟을대문 형식으로 1974년에 신축되었고, 외삼문 앞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 관람포인트

향교 입구의 계단은 보통 3줄로 되어 있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되, 계단을 오를 때는 오른쪽, 내려올 때는 왼쪽을 이용하는 것이 예의다. 중앙계단은 신(神)의 계단이므로 함부로 오르내리면 안 된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시흥 문원리 삼층석탑

소재지
과천시 교육원로 41
지정일
1989.06.01

문원리에 인접한 관문리 일명사지에서 옮겨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단측 기단과 3층 탑신을 구비한 석탑으로, 시멘트로 된 1단의 기단 위에 놓았다. 지대석에는 각 면 2구씩 장방형 액을 형성한 후, 내부에 장식을 조각했다. 중대석은 1석으로 조성하였는데 각 면에는 우주를 모각하였고, 갑석을 올려 놓아 초층을 받치고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각 1석으로 조성하였고 3층 탑신은 결실되었으며, 2·3층 옥개석 역시 파손되어 시멘트로 보강하였다.
현재 보광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기단부에 보이는 섬세한 안상형 장식과 초층 탑신면, 옥개석의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제작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문원리사지 석조보살입상

소재지
과천시 교육원로 41
지정일
1983.09.19

관문리사지 또는 문원4리 산117번지에서 보광사 창건 시 삼층석탑과 함께 옮겨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높이 170㎝의 각석주에 전면만을 선각한 보살 입상으로, 둥근 얼굴에 눈썹, 가는 눈, 입 등 낮은 입상으로 양각하였는데 전체적으로 평면적이다. 구분이 별로 없는 짧은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고,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법의를 걸치고 있다. 가슴에는 Y자형 옷깃을 표현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약식화 된 옷 주름을 보이고 있다. 왼손은 가슴에 대어 연꽃봉우리를 잡고 있고 오른손은 밑으로 옷자락을 잡고 있다. 머리에는 후대에 얹은 것으로 보이는 지름 96㎝, 높이 24㎝의 둥근 보개(갓)를 쓰고 있다.
둔중해 보이는 이 보살상은 납작한 얼굴, 좁은 어깨, 빈약한 체구, 서툰 옷주름선 등 지극히 도식화된 불상양식을 보인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머리에 보개를 쓴 보살상은 대표적으로 10세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전기 지방화된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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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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